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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가져온 모티브들

누군가의꿈이될 | 2014.10.15 12:23 | 조회 72

 

Q. 고전을 현대물로 각색한 영화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나요?

A.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마담 뺑덕]은 아시다시피 전래동화인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따와 현대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원작에서는 심학규, 즉 심봉사를 등쳐먹고 야반도주하는 캐릭터였던 뺑덕어멈이라는 인물을 덕이라는 젊은 여인으로 재탄생시킨 다음, 대학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심학규와의 긴 애증 관계를 영화의 큰 줄기로 다루었는데요. [마담 뺑덕]의 임필성 감독은 전작인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동명의 고전동화를 현대물로 각색하는 시도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다만 [헨젤과 그레텔]은 판타지이자 호러에 가까운 작품이었지요. 그리고 한때 한국 호러영화계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라든가,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에서 모티브를 따온 [분홍신], 봉만대 감독의 [신데렐라]처럼 비슷한 사례들이 줄을 이었더랍니다. 이 중에는 단지 제목만 따온 경우도 있었고요.

이미지 목록

[마담 뺑덕]

[장화, 홍련]

[분홍신]

그렇다면 할리우드에서는 어떤 시도들이 있었을까요? 몇 해 전에 '백설공주'를 판타지로 재해석한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개봉하기도 했는데요. 그 전에 이미 이 유서 깊은 동화를 현대물로 각색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만다 바인즈 주연의 [시드니 화이트]이지요. 캠퍼스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한 이 동화에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알려주던 거울'은 인터넷 인기투표로 바뀌었고, 사악한 왕비는 독불장군 학생회장으로 각색되었죠. 그녀의 미움을 산 시드니는 일곱 난쟁이 대신 일곱 공대생들과 함께 학생회장을 꺾을 계획을 세웁니다. 결국, 인기투표에서 시드니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학생회장은 독이 든 사과 대신 컴퓨터 바이러스로 그녀를 제압하려 하죠.

[시드니 화이트]의 아만다 바인즈와 일곱 공대생들.

[쉬즈 더 맨]의 남장여자 바이올라(아만다 바인즈)와 듀크 오시노(채닝 테이텀).

아만다 바인즈가 출연한 고전 원작 현대물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자 축구선수로서 인정받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남학생 축구팀에서 몰래 뛴다는 영화 [쉬즈 더 맨]은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한 편인 '십이야'에서 모티브를 따 온 작품이니까요. 당연히 원작은 축구와 아무 상관이 없고, 남장여자 바이올라가 시종으로서 모시게 되는 오시노 공작도 '듀크 오시노'(채닝 테이텀)라는 이름의 룸메이트로 바뀌었죠. 다만 오시노가 사랑하는 여인 올리비아가 남장한 바이올라에게 반한다는 삼각관계 설정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아만다 바인즈 못지않게 고전 원작 현대물에 단골로 출연한 여배우가 있으니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영화에만 두 번 등장한 줄리아 스타일스입니다. 고 히스 레저의 데뷔작이자 이제 갓 2차 성징을 마친 듯한 조셉 고든 레빗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한 편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의 []는 4대 비극에 해당하는 '오셀로'를 각색한 영화죠. 역시 두 편 다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물인데, 원작의 흑인 장군 오셀로 대신 [오]에서는 학교 농구팀의 주전선수 오딘(메키 파이퍼)이 등장하고 그를 시기해 파멸에 이르도록 흉계를 꾸미는 악역 이아고는 역시 같은 농구팀의 동료인 휴고(조쉬 하트넷)로 각색되었습니다. 줄리아 스타일스는 휴고의 계략에 희생되는 비운의 여학생 데시(원작에서는 데스디모나) 역을 맡았지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히스 레저와 줄리아 스타일스.

[오]의 줄리아 스타일스.

그 외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제목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원작과는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만,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고 각 집단에 속한 남녀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은 다름 아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져온 것이죠. 귀족 가문의 대립을 다루었던 원작과 달리 이민자들로 구성된 10대 소년 패거리들의 갈등을 묘사한 데다, 뮤지컬로서는 전례가 없는 새드 엔딩으로 개봉 당시 적잖은 충격을 선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의 시나리오 데뷔작 [트로미오와 줄리엣]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드고어 에로 버전 현대물로 각색한 사례라 할 수 있겠네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처드 베이머와 나탈리 우드.

B급 영화 제작사 '트로마'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 [트로미오와 줄리엣].

영문학계에 비교할 수 없을 족적을 남긴 셰익스피어만큼은 아니겠습니다만,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도 끊임없이 영상물로 만들어지는 인기 아이템 중 하나지요. 그리고 그녀의 소설 '엠마'를 현대물로 각색한 [클루리스]는 10대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데요. 중매쟁이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을 품고 있으나 정작 성사되는 사례는 드물고 심지어 제 머리도 못 깎을 뻔했던 19세기 영국 처녀 엠마의 이야기가 [클루리스]를 거치면서 20세기 말의 미국 틴에이저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로 재탄생했으니까요. 심지어 여주인공의 이름도 원작에서 따오지 않고 가수 '세어'에게서 빌려왔죠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1996년 영화 [엠마].

[엠마]의 미국 고등학교 버전 이판본 [클루리스].

가장 사랑받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한 편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여러 면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팬픽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콜린 퍼스가 출연했던 BBC 드라마 버전 [오만과 편견]이죠. 일단 설정부터 외모와 언변은 달콤하지만 속은 지질한 남자와 겉으론 까칠하기 짝이 없는 남자 사이에서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데다, 이 까칠남의 이름이 원작과 동일하게 '다아시'라는 점, 무엇보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에서 이 다아시 역할을 콜린 퍼스가 맡았으니까요.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 두 편의 영화 [클루리스]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에릭 카멘의 곡 'All By Myself'가 공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쇼테를로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는 로제 바딤 감독의 1959년도 영화를 필두로 이재용 감독의 사극 버전 [스캔들]은 물론, 허진호 감독의 한중합작 버전 [위험한 관계]까지 여러 차례 여러 배경으로 각색된 바 있죠. 당연히 미국 어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리메이크한 영화가 없을 리 없습니다. 바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인데요. [스캔들]의 출연진에 대입하자면 라이언 필립이 배용준, 사라 미셀 겔러가 이미숙, 리즈 위더스푼이 전도연 되겠습니다.

그 외에 찰스 디킨스의 동명소설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위대한 유산]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임창정, 김선아 주연의 [위대한 유산]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Q.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그대로 쓴 현대물들

A. 각색이라기엔 살짝 애매한 사례들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거의 고치지 않고 옛날식 대사 그대로 현대 배경의 영화에 쓴 경우들이니까요. 이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는 아무래도 바즈 루어만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1996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입니다. 대사는 사극인데 결투 장면에서는 총을 갈겨대고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당대 인기 뮤지션들의 곡이었죠.

조스 웨던 감독도 [어벤져스]를 찍고 난 후에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의 오리지널 희곡을 고스란히 가져와 현대물 [머치 아도 어바웃 낫씽]을 만든 것인데요.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화면도 흑백으로 톤을 맞추고 음악을 과하게 쓰지도 않았죠. 그럼에도 사복경찰들이 '야경꾼'이라며 등장하고 경찰서의 심문실에서 형사가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가?"와 같은 질문을 주워섬기는 등 감독이 의도한 부조리가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랄프 파인즈 감독, 주연의 [코리올라누스: 세기의 라이벌].

이 같은 시도를 가장 제대로 밀어붙인 사례는 영국의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 소속 배우이기도 한 랄프 파인즈 감독의 [코리올라누스: 세기의 라이벌]이 아닐까 합니다. 역시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코리올레이너스'의 희곡을 고스란히 가져와 기원전 5세기 무렵 로마의 장군이었던 마티어스(랄프 파인즈)와 볼스키 지역의 반군 아우피디우스(제라드 버틀러)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요. 마티어스가 이끄는 군대는 영화에서 로마군이라고 주장하지만, 군복과 장비는 아무리 봐도 미군입니다. 그런가 하면 AKS-47 소총을 쓰는 아우피디우스 군은 영락없는 현대식 게릴라 부대지요. 전쟁의 공적을 바탕으로 집정관이 되려는 마티어스에 대해 사람들이 찬반논쟁을 나누는 모습을 TV 토론 프로그램으로 각색하는 등 옛날식 대사 이외의 부분을 시대상에 맞춰 탁월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답변
조민준 (방송작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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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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